경남 통영시에서 20년 가까이 사업에 몰두했던 김성식(44세) · 서정민(47세) 부부가 농사를 짓고자 경북 안동으로 이주하면서 올린 주택이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전망 좋은 곳에 지은 주택은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부부에게는 '안식처'였다. 이주하고 2년간 적잖이 고생한 부부를 포근히 보듬어준 주택에 부부는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선택한 농촌 생활. 건축주가 20년 가까이 했던 사업을 접고 농부를 자처한 것은 일로 인한 심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남부럽지 않을 만큼 제법 돈을 벌었지만 행복한 줄 몰랐다는 건축주는 농사를 지으면서 땀의 대가와 그로 인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지금도 가끔 후회할 때가 있지요. 꽤 짭짤했던 그때를 생각하면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아직 농부의 자세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나 봐요.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야 '행복'이 어떤 것인지 알았다는 거예요. 매일매일 사업에 매달려 있을 때는 이런 기분을 느끼지 못했거든요." 농사를 지은 지 2년이 돼 가지만 그는 완전한 농사꾼이 되지 못했다고 했다. 도시 생활이 그리울 때가 있는 그는 가끔 걸려오는 통영 친구들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는다. 마음이 동動할까봐서다.
힘겨웠던 2년간의 농촌 정착기 그가 다시 통영으로 돌아갈 일은 없다. 2년간 힘겨웠던 농촌 정착기를 거치면서 돌아갈 것이라면 벌써 갔을 그였다. 가지않는 이유는역시 '행복'이다. 그는 이제는 힘들어도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 김성식씨는 정착과정에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술술 풀어 놓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1천 평 규모의 고추 농사를 시작했어요. 너무 힘들더라고요. 주위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았을 텐데. 사실 정말 힘든 것은 사람 관계였어요. 시골에서는 모든 것이 사람에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나더라고요. 지금 돌아보면 우리의 잘못이 컸다고 반성하지만 그때는 뭐 그런가요. 서운하기만 했죠. 지금은 괜찮아요. 어차피 인간관계는 시간이 지나면 치유가 되니까요. 지금은 모든 이웃과 허물없이 잘 지낸답니다." 그리고 그는 귀농, 귀촌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쉽게 보고 뛰어들면 안 돼요. 정말 귀농, 귀촌을 하고 싶다면 반년 정도 전세를 살면서 직접 농사를 짓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정말 자신이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거든요." 이렇게 지난 힘들었던 이야기를 꺼내는 걸 보니 이제 그는 어느 정도 '힐링'이 된 모양이다. "지금은 마음이 너무 편하죠. 사업하면서 늘 속이 좋지 않아 고생했는데 여기서는 그런 것도 없고요. 한 달에 한번 시내에 장을 보러 가는데 오래 있질 못해요. 1시간만 있어도 눈이 따가워 견딜 수가 없어요."
집은 나를 보듬어준 '안식처' 힘들었던 지난 2년, 부부를 보듬어준 것은 '집'이었다. 이주와 동시에 올린 주택은 힘든 농사일에 지칠 대로 지친 몸을 풀어줬다. 하루를 마감하며 부부가 나란히 앉아 거실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그들의 시름을 날려 버리기에 충분했다. 주택은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뒤로는 산이 받치고 앞으로는 마을이 한눈에 잡히는 빼어난 환경을 지녔다. 처가가 가까운 곳에 있다고 하나 이쪽 사정을 전혀 몰랐던 부부는 일단 인근에 소재한 시공 업체를 골라 건축을 의뢰했다. 아무래도 가까이 있으면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처하기가 쉬울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경사진 비탈을 다듬어 집이 들어갈 자리를 잡고 조망과 채광을 위해 주택을 최대한 뒤로 물려 앉혔다. 채를 나눈 듯 좌우측으로 돌출한 입면 구성은 공간 계획에 따랐다. 파벽돌로 마감한 우측은 거실과 주방/식당 공간이고 좌측은 안방과 욕실이다. 개인공간과 공용공간으로 구분해 채를 나누듯 평면을 짠 것이다. 채광과 조망을 살리고자 거실은 지붕 선을 그대로 살렸고 이로 인해 고가 높아져 개방감이 강조됐다. 더불어 거실 전면으로 큰 창을 내 빼어난 경치를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