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현대의 통일을 이룬다
-------------------------------------------------------------------------------- 현대인의 눈으로 흙집을 바라보았고, 흙건축의 현대화 실험을 내 걸고 솟대전원마을 4개 동을 완공했다. 솟대전원마을의 흙집은 분명 전통적 건축양식으로 보면 짚신 신고 양복 입은 모습이요 현대건축의 눈으로 보자면 완성도도 떨어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소비자의 눈으로 평가할 때 “아! 흙집도 이렇게 지을 수 있구나. 생활하기 전혀 불편함이 없고, 건강에도 좋고..... 모양도 괜찮네”라는 평가를 받는다. 솟대전원마을의 아스팔트싱글 지붕이 한식 기와지붕으로 바뀐 주문주택 사양에선 비로소 “그래, 바로 이거야. 우리 한옥의 맛인 소박하면서도 웅장하고 단조로우면서도 선이 살아있는 전통적 아름다움이 있어......” 하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호에선 1999~2000년 흙건축 실험의 결정판으로서 용인 백암 박광열씨댁 건축과정을 통해 그 성과와 한계를 짚어 보고, 그 과정을 통해 전통과 현대의 통일이란 화두에 답하고자 한다. --------------------------------------------------------------------------------
■ 연재순서 1. 사람과 집, 그리고 흙건축 2. 흙집의 현대화 실험 3. 노년의 삶을 담는 그릇 4. 종가의 꿈을 실현한다 5.전통과 현대의 통일을 이룬다 6. 흙집의 현대화와 대중화 실현을 위한 제안
개량이냐 계승이냐!
우리 살림집인 흙집, 한옥으로 대표되는 우리의 전통 건축양식을 되살린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당대의 사회구조와 생활양식이 결정한다. 산업화 사회인 현대에 있어 전통 건축양식은 폐기된 옛 것처럼 치부되었으나 ‘전통’이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대대로 이어져온 피내림보다 더 진한 것이 ‘전통’이다.살림집 건축양식의 전통을 되살린다는 것은 한옥의 복원이나 개량된 한옥이 아니라 전통 살림집 정신이 갖는 주거문화와 한옥건축의 핵심적인 요소들을 창조적으로 계승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가 지은 기와지붕의 주문주택 사양을 사람들은 ‘개량한옥’이라 부른다. 그러나, ‘개량’이란 표현은 단지 전통가옥의 형식을 빌려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계승’의 의미 속에는 ‘창조’라는 보이지 않는 개념이 포함돼 있다.
우리는 개량 한옥이라는 표현보다 ‘현대 흙집’, ‘현대 한옥’으로 불려지길 바란다.사람들은 단지 외형에서 보여지는 형태만을 가지고 구분 지으려 한다. 상업적으로 영합하는 사람들은 초가, 기와, 너와집 등 우리의 살림집을 모양으로만 꾸미고 그 속에 살아있는 살림집 정신과 한옥 건축의 핵심적인 요소들을 제거해 버렸다.
편의상 한옥의 흉내를 낸 모양만 흙집인 집들이 전통의 창조적 계승을 가로막고 있다.창조를 수반하지 않는 전통은 그 자체의 의미에 그칠 뿐이며, 살림집 정신을 배제한 외형 흉내내기는 개량에 지나지 않는다.
당대의 생활과 일치하는 살림집 구조, 흙건축 소재의 개발과 현대적 적용, 시공과정의 시스템화를 갖추는 발전이야말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현대흙집, 현대한옥의 정형화에 이를 수 있는 창조적 계승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현대인의 보편적 정서와 생활양식
용인시 백암면 자연부락에 정착한 박광열씨는 40대 중후반의 장년층에 속한다. 시골에 터를 마련하고. 흙집을 선호하기엔 조금 젊은 나이다. 하지만, 이 분들이 시골에 터를 찾고, 흙집을 신축한 과정을 보면 현대인의 살림집 정서와 생활양식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박광열씨는 직장은 서울이고, 이 곳으로 오기 전엔 수원의 아파트에 살았다. 모든 직장인들이 그렇듯 하루의 일과가 스트레스의 연속이었고, 벗어나고 싶은 욕구는 점점 더 강해졌다. 아파트 숲의 도시는 심신을 뉘울 삶의 여유를 찾을 수 없었다. 아내는 건강이 좋지 못했다.
하지만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문화의 향유와 삶의 질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편리함에 익숙해져 있는 도시적 삶의 방식을 하루 아침에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현대인들의 정서는 대개가 박광열씨의 처지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래서 ‘조금 더 나이 들면 시골로 내려가야지......’ 하는 마음을 먹고 일상에 쫓겨 미루고 미루다 어떤 이는 뜻을 이루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포기하기도 하는 것이다.
직장과 풍요로운 삶을 찾아 도시로 향하던 사람들이 이제 고향과도 같은 시골로 마음이 향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박광열씨댁은 마음먹은 바를 이룬 예에 속한다. 하지만 또 그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제일 먼저 집터를 구하는 일이다. 대개의 사람들이 그렇듯 시골에서 집터를 찾게 될 경우 고집하는 한가지가 있다.‘배산임수의 남향집’을 찾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보면 배산임수는 집터의 선택 기준이었고, 남향집은 집의 방향을 결정하는 조건이었다.
현대사회에 있어서도 뿌리깊게 남아있는 전통적 살림집의 기준이 오늘에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현대인이 흙집을 선택할 때 포기하지 않는 또 하나의 고집이 있다. 흙집이라지만 도시에서 살던 것과 같은 불편함 없는 실용적 구조를 마음에 둔다는 점이다. 바로 이점이 전통가옥의 배치 및 평면과 대립한다.
실용성과 기능성을 중시하는 현대인들의 생활에 맞게 건축물의 배치 및 평면이 기획되어야 하는데, 바로 이 점이 전통가옥의 창조적 계승을 요구한다.
하지만, 현대건축물로서의 흙집이라 하여도 선조들의 살림집 지혜인 구들방, 툇마루, 가마솥, 텃밭 등은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바로 전통과 현대의 대립하는 지점들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통일시키는 것이 현대 흙건축의 최대 과제가 되는 이유이다.
전통과 현대의 통일을 위한 대안 설계
신축 설계에 대한 박광열씨 내외의 주문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1) 본채는 35평의 목구조 흙벽돌집으로 할 것 2) 본채는 방 3, 거실, 주방으로 구성하되 방1 개는 구들방으로 해 줄 것 3) 정자가 있었으면 좋겠음 4) 별도의 창고는 약 10평 정도로 일반 벽돌로 지어줄 것 등이었다.
구입한 토지의 뒷 편에 택지가 있고, 택지 앞은 농지로 구성된 부지라 우리의 살림집 배치와 구성을 할 수 있는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요구 또한 소박하면서도 옛 맛을 잘 살렸으면 하는 주문이었다.
현대 흙집, 현대 살림집의 정형화된 형식을 현실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물의 배치 및 평면 설계에 들어가면 고려되어야 할 핵심 사항이 세 가지 있다.
그 하나는 택지의 모양새(생김)에 따라 건축물 규모를 고려한 배치가 이루어져야 하는 점이고 둘째는 살림집 구성원들의 용도와 쓰임에 따라 공간구획이 이루어 져야 한다. 셋째는 전원생활의 여유로움을 찾을 수 있는 외부 동선을 고려해야 한다.
먼저 안방은 동향과 남향의 채광을 받을 수 있는 곳에 배치하고, 서재는 안방의 뒷편(동향채광)에 배치했다. 거실은 집의 중앙에 남향으로 배치하고, 거실 뒷 편에 주방과 다용도실, 공용화장실을 배치했다.
구들방의 아궁이는 뒷편(북쪽)에 두고 구들방 앞에 3평 크기의 정자를 배치했다. 내부 평면은 현대주택의 평면설계에 뒤지지 않는 기능성과 실용성을 중시했고, 전통가옥의 정서인 구들방과 정자를 본채에 결합함으로서 전통과 현대의 생활상을 통일시켜 내는 현대한옥을 실현코자 했던 것이다.
이렇듯 현대주택의 평면 설계안은 전통가옥에 비해 폭이 커짐으로서 지붕의 모양은 단순 서까래 방식으로는 불가능하여 현대 공법인 트러스 방식으로 처리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붕의 처마 선은 서까래와 부연으로 전통의 맛을 살려냄으로서 한옥의 정수를 계승코자 했다.
아쉬움이 있다면 다용도실을 전통적 방식의 저장소 형태로 발전시켜 세탁공간과 음식물 저장공간으로 발전시키려던 계획을 평수의 제한으로 인해 포기한 점이다.
또한 박광열씨는 건축 중에 창고 10평을 친척들이 머물 주거용으로 개조하였으며, 창고기능의 하우스를 별도로 한 동 만들었다. 살면서 필요에 의해 지어지는 건축과정은 전통적 채나눔 형식의 현대적 적용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농터와 과실수로 어우러진 현대흙집
집은 그 집에 사는 사람을 닮는다. 외형이 화려하다 해도 그 집에 몸담고 있는 사람의 삶이 담겨 있지 않으면 그 집은 죽은 집이다. 아무리 소박하고 단순하다 하여도 주인의 손길이 닿고 삶이 채워지면 그 집은 빛을 발한다.
봄이 되자 박광열씨댁은 묵은 겨울의 때를 벗고 새 단장을 하였다. 시골 농터의 뒷자락에 덩그런히 집 한채가 서 있던 것이 측백나무 울타리와 과실수가 감싸안고 현대 한옥의 선을 더욱 더 살려내는 큼직한 소나무 몇 그루가 집을 아늑하게 만들었다.
벌목한 나무로 울타리가 둘러쳐진 농터에는 파종을 기다리는 설레임이 있고, 창고기능과 저장소 기능을 맡을 발코니를 뒷 편으로 달아냈다. 살면서 하나 하나 만들어 가는 살림집 지혜야말로 전통 주거문화의 본령이 아닐까.
도시적 삶과 농촌의 삶이 대립하지 않으며, 현대인의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가꾸어 가는 박광열씨댁의 신축과정에서 현대흙집의 살림집 정형을 깨닫는다.田
글 이동일(행인흙건축 대표 031-335-8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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