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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 > 전원컬럼
글번호 109 (6197) 작성자 전우문화사 날짜 2004-04-27 조회수 3170
제 목 [전원일기] 분위기가 있는 관광버스

결혼 8년 만에 허물을 벗듯 혼자만 빠져 나온 나들이였다.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관광지를 순례하듯 다니는 여행이 아닌, 여자들만의 여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차를 타고 약속 장소까지 가는 동안의 설레임과 기대에 찬 조바심까지도 천천히 즐기며 여행이라는 식단을 기다리는 미식가가 되었다.

은발을 수줍게 감춘 나이에서 풋풋한 풀내음이 나는 세대까지 분위기도 다양한 여자들(정확히는 아줌마들)이 탄 관광버스가 드디어 동해 바다로 떠났다. 어쩌다가 글을 쓰고 문학을 하는 여류들의 모임에 끼게 된 것이 내가 그 관광버스에 타게 된 인연이었다.

도심을 빠져 나가자 먼 산에는 물빛 아지랑이가 피어 몽실몽실 솟아나고 물가의 버들가지는 보송보송하고 통통하게 물이 오르는 봄이 있었다.

버스 안의 여심(女心)들도 모처럼 살림의 때를 벗어 버리고 나온 길이라 마냥 들뜨는지 그저 지나가는 바깥 풍경에도 탄성을 쏟아내다가 이른 아침부터 서두른 피곤함에 더러는 잠이 들기도 하고 수다의 꽃을 피우기도 하는 등 관광버스는 흘러가는데…

작년 초 여름, 유치원 다니는 아들 녀석의 소풍 길에 따라 나선 적이 있었다. 관광버스 두 대에 자모들과 아이들이 나눠 타고 2시간을 가는 동안 처음에는 아이들 수준에 맞춰 동요로 귀엽게 시작한 분위기가 이상하게 서서히 토요일 밤의 열기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휴게소에서 아이들을 한 차로 몰아서 태우고는 엄마들만 탄 버스 안에서 점심도 먹기 전에 질펀한 음주가무의 판을 벌이고 말았다.

이제 겨우 유치원 아이를 둔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 대 후반의 엄마들은 그 젊음과 끼를 발산하는데도 거침이 없었다.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를 사양하는 법도 없이 부르고 흔들어대는데 아이들 소풍이 아니라 엄마들의 묻지마(?) 관광 같았다. 원장님의 배려로 가져온 두 박스의 캔맥주가 이미 반이 동 나고 따라 부르기도 어려운 최신 댄스곡들이 이어지는데도 젊은 엄마들은 지친 기색이 없었다.

한창 나이를 아이들 뒤치다꺼리와 가정주부의 역할에 묶어버리고 있는 것이 아쉬운 몸짓들인양 아무도 못 말릴 기세였다. 관광버스 내의 음주가무가 불법인줄 알고 있었지만 한번 달아 오른 분위기 앞에서는 법도 두렵지 않았다. 내 생전에 여고시절 수학여행 이후에는 그런 광란의 춤판이 된 관광버스는 방송에서나 보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 날은 그 한복판에 내가 있었다.

그렇게 흥분의 도가니 속에서도 휴게소에 멈출 때마다 아이들이 탄 버스에 쫓아가서 자기의 아이들이 잘 있는지 확인하는 모정을 보여주는 것을 보면 아이들과 함께 나온 소풍길이 맞긴 맞았다.

그런데 동해안으로 가는 그 관광버스의 분위기는 남편과 아이들 떼어 놓고 8년 만에 홀가분하게 나온 외출치고는 너무 밋밋한 분위기였다. 다시 한번 작년과 같은 춤판을 벌이고 싶어 몸이 들썩대는 것이 아니라 쉽지 않게 나온 여행길에서 추억도 없이 돌아가게 될까봐 조바심이 쳐졌다.

작년 광란의 유치원 소풍을 통해서 나는 얻은 것이 많았다. 비슷한 연배의 자모들과 친하게 되어 타향살이의 고단함을 서로 주고받으며 마음 든든한 친구로 지내는 계기가 된 것이었다. 남들이 볼 때 볼썽사나운 모습이었지만 그렇게 함께 몸을 풀고 나니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고 이해의 폭이 열린 것이었다. 내가 마음 편하게 글 쓰는 여류들의 그 모임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도 우리 아이들을 맡아서 돌봐주는 작년 관광버스의 주역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버스 안에는 아찔하게 구불거리는 미시령을 넘어 설악산에 도착할 때까지도 아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고, 등반을 마치고 정해진 숙소에 도착해 저녁식사까지 여정을 충실하게 마쳤을 뿐이었다.

저녁 식사 후에야 40여 명의 여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자기소개를 하고 팀별로 장기 자랑을 하는 시간이 있었지만, 글을 쓰고 문학을 하며 연륜이 있는 여류들과 팔팔한 젊음이 넘치는 유치원 자모들과는 분위기의 차원이 달라서 노는 것도 우아하기만 했다. 시 낭송을 하고 자작시를 발표하고 가곡을 부르는 등 노는 물이 확실히 달랐다.

솔직히 나는 몸치에 춤치라서 오히려 음주가무가 있는 분위기를 요령껏 피하면서 살아온 편이다. 하지만 인맥 하나만 믿고 끼게 된 모임에서 동질감이나 유대감을 얻기 위해선 작년처럼 망가져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발상의 전환을 겪은 참이라 마음의 준비를 했었다.
다음날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이었다.

그런데 엊저녁 멋지게 시낭송을 해서 분위기를 까무라치게 했던 여사가 마이크를 잡더니 도저히 용인이 안 되는 걸쭉한 입담을 늘어놓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노래방 기계를 켜고 댄스파티 분위기를 잡더니 번호책을 돌리며 노래를 유도했는데 어떻게 저런 끼로 전날에는 얌전하게 올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해서 흥이 오르고 즐거운 관광버스가 되었지만, 아무도 통로로 나와 몸을 흔드는 사람은 없었다. 사회자가 먼저 시범을 보이며 망가짐을 유도했지만 아무도 그 분위기를 타지 못하고 있었다. 부르는 노래부터 댄스곡들은 없고 ‘돌아오라 소렌토로’, ‘콜로라도의 달’, ‘우중의 여인’ ‘한계령’, ‘사랑, 그 쓸쓸함에 관하여’ 등 분위기가 있는 노래들로만 이어지더니 다시 시 낭송에 이어 유장(悠長)하게 고시조를 읊어 정서를 자극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것도 부족해 메모지를 쥔 손마다 뭔가를 끄적거리느라 고개를 수그리고 있거나 먼 산 바라기를 하며 분위기에 젖어 있는 모습들이 역시 글쓰기에 맺힌 여인네들이지 집안일에서 해방된 가정주부들의 전형들은 아니었다.

작년과 올해 나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관광버스를 타게 된 색다른 경험을 통해 살아가는 여러 가지 맛을 조금씩 맛보게 되었다. 환경에 따라 다양한 먹거리가 발달을 하듯 사람이 살아가는 일에도 다양한 체질들과 입맛들을 만나는 일은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미식가처럼 호기심이 자극되고 신나는 일이었다. 田

■ 글쓴이 | 오수향 (ocho290@hanmail.net)

∴ 글쓴이 오수향은 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 폐교에 살면서 글쓰기의 꿈을 좇아가고 있는 주부입니다. 공주 KBS,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수향의 시골살이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은 메일을 보내보세요. 더욱 재미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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